영원히 배부르게는 먹지 못할 것 같던 그 미련 많던 우리의 간식 '띠기'. 나중에 크면 돈 많이 벌어서 질리도록 먹어야지라는 결심을 했지만 대학로에서 비닐에 싼 500원짜리 하나 사먹어봤을 뿐 그때의 결심은 한번의 웃음으로 넘어가는 일이 되어버렸다.
학교 앞에서 고만고만한 것들끼리 재재거리며 해먹던 '띠기'는 작은 '도박판' 이었다.
눈사람 모양, 오징어 모양, 비행기 모양 등을 한껏 부풀은 그것에 꾹 눌러 주면
떨리는 가슴으로 두 손에 받아쥐고는 숨죽이며 갖은 요령으로 떠내기까지 얼마나 가슴을
졸였던지...
이런 경험은 누구나 했을 것이다..
만약 없었다면....안타까운 일이다..그 재미나고...단내가 물씬 풍기는 그것을....!
웬만해선 결코 성공 할 수 없었던 그 '도박'에 50원짜리 몇 개가 휘닥 날아가고 나면
'파티'는 끝나고 허허한 심정으로 집까지 터벅터벅 걸어오곤 했다.
성공하기 위해선 여러 가지 방법이 다 동원된다.
선을 따라 바늘로 찌르기, 침을 발라가며 녹은 곳 뗘내기, 쇠모양을 찍을 때
잽싸게 손을 뻗어 할머니의 손을 한번 더 눌러주기,
여차 실수해서 목이라도 부러지면 침을 발라 붙여서 성공했다며 내놓기도 하지만
어디 이런 놈이 한두 명 뿐이랴.
그런 것을 내밀었다간 머리통을 쥐어박히지 않으면 다행인 것이다.
나는 딱 한번 성공 한 적이 있다.
단순하지만 무지한 인내를 요하는 것으로
손톱에 침을 적당히 발라가며 모래성에 꽂은 막대기 쓰러뜨리기 게임보다 더 조심스럽게
긁어내는 방법을 썼다.
할머니에게 내미는 손이 어찌나 떨리던지...
"하나 더 해줘?" 라는 할머니의 확답에 주위 코흘리개들의 "우와~~"하는 함성을 듣고
어떻게 한거 냐는 존경어린 눈빛에 "그냥 손톱으로...."라는 대답에
"에이~~"하고 이내 돌아서 버린다.
다 아는 방법인데...뭘~~~
그러나...성공으로 가는 길은..그것뿐이지 않는가..
그냥 조심조심 아주 조금씩 떠내는 것밖에는...!
사실 우리집에는 설탕과 소다는 흔했다.
문제는 집안 살림인 국자와 엄마의 눈초리 뿐이다.
설탕에 한번이라도 그을린 국자는 아무리 힘들게 닦아도 흔적이 남는 것이다.
그래서 '띠기'를 집에서 해먹는 다는 건 위험부담이 무척 크다. 댓가도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밖에서 사 먹는 '띠기'는 너무 감질나고 무엇보다 돈이 필요하다.
얼마 되지 않아 우리에겐 고대하던 찬스가 생겼다~~!!
엄마가 이모네 놀러가신 것이다.
집안에 큰일이 아니라면 엄마의 부재는 거의 없던 일이다.
그동안 엄마 모르게 준비 해 둔 '띠기도구들'을 사용할 날이 온 것이다.
언니와 나, 동생들은 가게에 게신 아빠의 눈을 피해
부엌으로 가 문을 굳게 닫았다.
언니는 석유 곤로에 성냥불을 그었고,
난 부엌문에 기대앉아 유사시에 있을 아빠의 방문에 대비해
문손잡이를 그러쥐고 앉아있는다.
동생들은 작은방 터럭에 나란히 앉아 초롱초롱 눈을 빛내고 있다.
달궈진 국자에 하얀 설탕이 부어지고 주위가 투명하게 녹을 즈음 나무젓가락으로
휘휘 젖는 언니의 행동은 경건하기 그지 없었다.
"야...소다..소다~!!"
"거기 있자나....거기!.빨리 좀 해..언니"
"가만 있어...와~~올라온다..."
동생들은 한걸음에 달려왔고 난 길지도 않은 고개를 쭉 빼어 석유곤로 쪽으로 온몸을 기울인다.
하얀 설탕이 불에 데워져 보기에도 침이 고일 갈색꿀물로 변할 때
하얀소다를 젓가락에 한껏 뭍혀 휘~저으면 금새 동그랗게 부풀어 올라
황토색의 반짝반짝 우리의 '띠기'가 완성되는 것이다.
짧은 동안 얼마나 기다렸던 순간인가!!
냄새 또한 얼마나 기막히던가~!!
어린 동생들은 언제 가져왔는지 젓가락을 하나씩 입에 물고 있다.
이제 젓가락을 국자에 담가 뭉텅이 묻어나오는 그것을
'휘휘' 불어 입에 넣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부엌에 누구 있냐? 여기 문 좀 따봐라..."
허어어어~~~억!!
가게에 있는 아빠도 아니고.....
부엌 뒷문에서 홀연히 들리는 저 목소리는 이모네 가신 엄마가 분명했다!!
어째서 엄마가 저기에 있는거지???
조그만 국자를 가운데 두고 온통 젓가락 끝에 정신이 팔린 우리들은
부엌 뒷문을 망연히 바라본 채 소초간을 정지해 있었다.
그러나....우리들은 이미 준비해 놓지 않았던가~!
일단계는 아빠의 방문인데
잘 열리지 않는다며 언니가 흔적을 치우는 동안 아빠를 묶어둔다는 작전이었다.
가끔 물에 젖은 나무문은 덜컥 거리며 열리지 않는 수가 있어서 가능한 플레이였다.
이단계,,,작전 돌입인 것이다.!
말이야 일단계, 이단계지...사실상 너무나 허술한 작전이다.
생각지도 못한 이단계로의 돌입이지만....
날쌔게 부엌문으로 튀어간 나는 뒷문을 견고히 지키고 있는
달팽이 모양의 걸쇠를 잡고 삐걱대며 돌리려 애쓰는 척 했다.
"엄마...이게 잘 안돌아가.."
내눈은 언니에게 빨리 치우라는 눈짓을 보냈지만 그 뜨거운 것을 어디에 숨긴단 말인가?
내 걱정은 안중에 없는 듯 잽싼 언니의 동작은 띠기가 푸짐히 담긴 국자와 젓가락을
수돗가옆 물이 내려가는 통로에 던져 버린다.
동생들도 작은방 터럭앞에 잽싸게 돌아가 앉는다.
언니와 나만이 벌개진 얼굴로 씩씩 거릴 뿐 동생들의 얼굴은 너무나 태연했다.
혼이 나더라도 이런 경우엔 나 아니면 언니가 혼날 것이란걸 알고 있는지....
그 모습이 얄미울 정도로 태평했던 것이다.
'끼릭 끼릭' 달팽이 걸쇠가 벗겨지고 진짜 엄마가 들어오신다.
이모네 가신다더니..왜 여기 있냐고...항의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벌건 대낮에 문까지 걸어 잠그고 뭐하는 거여?"
물음과 동시에 엄마의 코가 큼큼 거리는 걸 보았다.
부엌과 우리들을 휘 둘러보시더니 엄마의 시선은 수도쪽으로 정확하게 향한다.
'들켰다...이제 어쩌지? 도망갈까?'
여름에 입는 깔깔이 한복을 곱게 차려 입으신 엄마의 치마가 훼엑~ 날리는게 보인다.
난 눈을 질끈 감고야 말았다.
나도 동생이지만..이런 상황이라면 엄마에게 혼나는 건 늘 나였던 거 같다.
언니는 공부도 잘 했고, 말썽은 거의 부린 적도 없다.
소풍이나 절에서 가는 수련대회를 갈라치면 항상 엄마의 당부가 나를 주눅들게 만들었다.
"지발...영란아...까불지 말고 얌전히 댕겨~~알었냐?"
지금에서야 엄마의 이런 당부가 조금이라도 이해가 되는건...
내가 부모가 돼서 아이를 키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유나야...선생님 말씀 잘 듣고 옆 친구 손 꼭 잡고 다녀..알았지?"
나처럼 주눅이 들까봐서 부드럽게 바꿔 말하는 내가 우습기도 하다.
그러고는.....수초가 흘렀다.
"에구야~~ 이 아까운 걸 왜 버렸다냐?"
엄마의 에상치 못한 말에 내 눈은 번쩍 뜨였고
아직 채 식지 않은 그것은 오뉴월 길에 붙은 껌처럼 납작해져 있었고
엄마의 손에 얌전히 들려 있었다.
'언니도 나처럼 놀랬겠지?' 하는 생각에 언니를 돌아봤다.
그러나..언니는 역시 왕센스꾼이다.
"엄마..이모네 왜 안 갔어? 덥지? 내가 사이다 갖고 올까?"
엄마가 내게 다가온다.
"얼른 먹어 치우고 잘 닦아 놔라!"
멍청히 서 있는 나에게 국자를 건내주시며
부엌을 나가시는 엄마의 뒤를 따라 언니와 동생들이 쪼르르 따라 나간다.
'그냥...먹을 걸.....'
잠시동안 하수구에 버려진 것이지만 혼나지 않은 안도감 때문인지
먹지 못해 아까울 분이었다.
'석유 곤로에 올려볼까? 녹이면 다시 먹을 수 있는데....'
그 뒤로 또 해먹자는 나의 말에 언니와 동생들은 흥미를 잃은 듯 고개를 돌려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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